서울 암사동 선사주거지, 신석기 시대

한국에서 약 400개의 신석기 유적지가 발견되었습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유적은 약 20여 곳이며, 그 중 서부 지역 신석기 주거지 중 최대 규모이자 가장 많은 유물이 발견된 서울 암사동의 선사시대 주거지를 살펴본다.


암사동 복원 별장 사진
복원된 암사동 움집

신석기 시대

약 10,000년 전, 지구에서 빙하기가 끝난 후빙하기가 되었을 때, 지구는 단단하게 얼어붙었습니다.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수렵, 채집, 어업을 하던 사람들이 농사 기술을 배워 실생활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농업에 적합한 땅을 찾아 정착했으며, 이 시기를 신석기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는 신석기 시대를 “혁명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인류는 농업을 통해 문화 전반에 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농경생활에 필요한 농기구를 만들기 위해 석기농기구는 매우 정교해졌고 신석기인들은 깎아 만든 석기를 만드는 방법을 남기고 깎아 만든 석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또한 잉여 농산물을 저장하기 위해 저장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빗살토기는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로서 암사동 선사유적전시관에서 빗살무늬토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 빗살무늬 토기는 모두 암사동 선사시대 주거지에서 주조한 토기이다.

토기의 형태는 밑부분이 평평해야 하지만 빗살무늬토기는 밑부분이 날카롭다.

그 이유는 빗살무늬 토기는 수확한 곡식을 담아 저장하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또는 양쪽에 구멍을 뚫고 끈을 끼워 식료품을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요리를 할 때 끝이 날카로워서 솥에 넣어 음식을 조리하고 먹기도 수월했다.

세라믹 외면의 촘촘한 벌집무늬는 해치라인으로 구워져 세라믹을 저온에서 구웠을 때 쉽게 갈라지는 것을 방지합니다.

암사동 선사시대 주거지 역사탐방

사적 제267호로 지정된 암사동 선사시대 주거지는 1925년 일제강점기 대홍수 때 발견됐다.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1960년 야구장 부지 선정 과정에서 빗살무늬 토기 파편이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암사동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는 빗살무늬토기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형태로 주목을 받았다.

바닥이 뾰족하기 때문입니다.

암사동에서 신석기 시대 주거지가 발견된 후 지금은 암사동 선사문화공원으로 조성되어 수혈집이 복원되었습니다.

입구로 들어와서 우회전하면 움집이 보입니다.

암사동 선사시대 주거지에서 20여 곳의 은신처가 발견되었는데, 대부분이 사각형 또는 원형이다.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신석기인의 서식지를 복원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 총 8점이 복원되어 전시되어 있습니다.

움집에 들어서면 중앙에 화덕이 있고 5명 정도의 가족이 앉기에 적당한 자리가 있다.

이는 신석기인들이 가족 단위로 좌식 생활을 했음을 보여준다.

방 바닥에서 약 70~100m 아래에 있으며, 신석기인들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반지하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1전시실은 암사동에서 출토된 각종 석기와 빗살무늬토기 파편을 전시하고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발굴지역에 따라 모양과 문양의 차이가 있어 관람 시 이러한 차이를 비교해보는 것이 좋다.

제2전시실에서는 암사동 선사시대 주거지의 역사와 출토 유물의 역사를 영상으로 보여줍니다.

빗살 무늬가 있는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과 신석기시대 매장문화도 볼 수 있다.

선사 시대 생활 경험 배우기

암사동 선사시대 저택에서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전시장을 돌고 나면 문지르고 퍼즐을 풀 수 있는 체험코너가 있고, 출구 왼편에는 유료 체험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도기를 칠하고 유약을 바르고 말려서 목걸이를 만들 수 있고, 흙으로 빗살무늬 도기와 구덩이집을 만들 수도 있다.

아까 전시장에서 봤던 빗살무늬 석기를 기억하고 정교하게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